양반전 - 박지원
양반전 -박지원
1)
'양반'이란 선비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강원도 정선군에 어떤 양반이 살고 있었다. 이 양반은 어질고 글 읽기를 좋아하여 군수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몸소 그 집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 양반은 가난하여 해마다 관청의 환곡을 꾸어다 먹었다. 그 빚을 갚지 못하고 해마다 쌓여서 천 섬에 이르렀다.
강원도 감사가 정선 고을을 돌아보다가 한곡 장부를 조사하고 크게 노하였다.
"어떤 놈의 양반이 나라의 곡식을 축냈단 말이냐?"
감사는 그 양반을 잡아 가두라고 명했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빚을 갚지 못하는 것을 딱하게 여겨 차마 가두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군수도 양반의 빚을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양반은 빚을 갚을 길이 없어서 밤낮으로 울기만 하였다. 그의 아내가 양반을 몰아붙였다.
"당신은 평소에 글 읽기만 좋아하더니, 환곡을 갚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구려. 쯧쯧, 양반이라니......, 한 푼어치도 안 되는 그놈의 양반!"
▶ 중심 내용 정리
관아에서 빌린 환곡을 갚지 못해 곤란한 상황에 놓인 양반
▶ 주요 내용 정리
- 강원도 정선군 : 공간적 배경
- 이 양반은 ~ 좋아하여 : 등장인물인 양반의 특성
- 군수가 새로 ~ 인사를 드렸다 : 군수에게도 존경을 받는 양반
- 이 양반 ~ 천 섬에 이르렀다 : 경제적으로 무능한 양반의 모습
- 양반은 빚을 ~ 울기만 하였다 :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한 양반의 모습
- 쯧쯧 ~ 양반 : 아내의 말을 통해 양반의 경제적 무능력함 비판
2)
그때 그 마을에 사는 부자가 그 양반의 소문을 듣고 가족과 의논하였다.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귀한 대접을 받고, 우리는 아무리 잘살아도 항상 천한 대접을 받는다. 양반이 아니므로 말이 있어도 말을 타지 못한다. 또한 양반만 보면 굽실거리며 제대로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뜰아래 엎드려 절해야 하고, 코를 땅에 박고 무릎으로 기어가야 한다. 우리 신세가 가엾지 않으냐? 지금 저 양반이 환곡을 갚지 못해서 아주 난처하다고 한다. 그 형편으로는 도저히 양반의 신분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의 양반을 사서 양반 신분으로 살아 보자."
부자는 곧 양반을 찾아가 환곡을 대신 갚아 주겠다고 청하였다. 양반은 크게 기뻐하며 승낙하였다. 부자는 즉시 관청에 가서, 양반 대신 환곡을 갚았다.
▶ 중심 내용 정리
양반 신분을 사기로 한 부자
▶ 주요 내용 정리
- 부자 : 조선 후기에 등장한 신흥 계층의 전형적 인물 / 경제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계층이 생김 / 신분제 동요
- 양반은 아무리 ~ 기어가야 한다 : 부자가 양반 신분을 사게 된 동기
- 그의 양반을 ~ 살아 보자 : 돈으로 신분을 사고팔았던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
3)
군수는 양반이 천 섬이나 되는 환곡을 모두 갚자 몹시 놀랐다. 군수는 환곡을 갚게 된 사정을 알아보려고 양반을 찾아갔다. 그런데 뜻밖에 양반이 벙거지에 잠방이를 입고, 길에 엎드려 '소인, 소인' 하며 자신을 낮추지 않는가? 그뿐만 아니라 양반은 감히 군수를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군수가 깜짝 놀라 양반을 붙들고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이런 짓을 하시오?"
양반은 더욱 벌벌 떨면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아뢰었다.
"황송하옵니다. 소인이 저 자신을 욕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환곡을 갚느라고 이미 양반을 팔았으니, 이제는 이 마을의 부자가 양반입니다. 소인이 어찌 다시 양반 행세를 하겠습니까?"
군수는 감탄해서 말하였다.
"군자로구나, 부자여! 양반이로구나, 부자여! 부자이면서도 재물을 아끼지 않으니 의로운 일이요, 남의 어려움을 도와주니 어진 일이요, 천한 것을 싫어하고 귀한 것을 바라니 지혜로운 일이다. 이야말로 진짜 양반이로구나! 그러나 양반을 사고팔면서 증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소송의 꼬투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고을 사람들을 불러 보아 증인으로 세우고, 증서를 만들어서 양반을 사고판 일을 모두에게 알리도록 하자. 나도 당연히 증서에 서명을 하겠다.
▶ 주요 내용 정리
양반과 부자의 사정을 듣고 증서를 만들어 주기로 한 군수
▶ 중심 내용 정리
- 양반이 벙거지에 ~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 양반의 신분을 부자에게 팔아서 평민처럼 행동함
- 그러나 양반을 ~ 될 수 있다 : 증서를 만드는 이유
▶ 어휘 정리
- 벙거지 : 조선 시대에 궁중 또는 양반집의 하인이 쓰던 털로 만든 모자
- 잠방이 : 가랑이가 무릎까지 내려오도록 짧게 만든 홑바지
- 소인 : 신분이 낮은 사람이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자기를 가리키는 말
4)
군수는 관청으로 돌아와서, 고을의 양반과 농사꾼, 장인, 장사치들까지 모조리 불러 보았다. 그리고 부자를 높은 자리에 앉히고, 양반을 낮은 자리에 세워 두고는 다음과 같이 증서를 작성하였다.
▶ 주요 내용 정리
양반 신분 매매 증서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모은 군수
▶ 중심 내용 정리
- 양반과 ~ 장사치 : 사농공상
- 부자를 높은 ~ 세워 두고는 : 양반과 부자의 신분이 바뀌었음
※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