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 분석 - 작자미상 (2)
[4]
이에, 얼굴빛을 태연스럽게 하고 고개를 들어 용왕을 우러러보며 가로되,
"제가 비록 죽을지라도 한 말씀 아뢰리다. 용왕님은 수궁의 임금이시요, 저는 산중의 하찮은 짐승일 따름이옵니다. 만일, 제 간으로 용왕님의 병환을 낫게 할 수만 있다면, 어찌 한낱 간 따위를 아끼겠나이까? 게다가 죽은 뒤에 후하게 장사를 지내 주고 사당까지 세워 주신다고 하시니, 그 은혜는 하늘과 같이 넓고 크나이다. 비록 지금 죽는다고 한들 어찌 조금이라도 여한이 있겠사옵니까? 다만 애달픈 바는 제가 비록 하찮은 짐승이오나 보통 짐승과 달라, 지금은 간이 없나이다. 저는 본래 하늘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까닭에 아침이면 옥 같은 이슬을 받아 마시며 밤낮으로 향기로운 풀을 뜯어먹고 사 옵니다. 제 간이 영약이 되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은 저를 만날 때마다 간을 달라고 심히 보채지요. 저는 이런 간절한 부탁을 매번 거절하기 어려워 간을 염통과 함께 꺼내 맑은 계곡물에 여러 번 씻어 높은 산, 깊은 바위틈에 감춰 두고 다닌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별주부를 만나 여기에 따라온 것이니, 만일 용왕님의 병환이 이러한 줄 알았던들 어찌 가져오지 아니하였겠나이까?"
하며 도리어 자라를 꾸짖었다.
"네 진정 임금을 위하는 정성이 있을진대, 어이 이러한 사정을 일언반구도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 중심 내용 정리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토끼의 꾀
▶ 본문 내용 정리
- 얼굴빛을 태연스럽게 하고 :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행동하는 토끼 → 의뭉스럽다, 능청스럽다
- 우러러보며 가로되 : 문어체, 고전 소설의 특징
- 용왕님은 수궁의 ~ 짐승일 따름이옵니다 : 자신은 죽어 마땅하다 (용왕의 말을 그대로 인용)
- 한낱 : 하잘것없는
- 조금이라도 여한이 있겠사옵니까 : 죽어도 여한이 없다 (설의법)
- 지금은 간이 없나이다 : 토끼가 생각해 낸 꾀
- 저는 본래 ~ 먹고 사 옵니다 : 토끼의 간이 영약이 되는 이유
▶ 어휘 정리
- 여한 : 풀지 못하고 남은 원한
- 영약 : 신비스러운 효험이 있는 신령스러운 약
- 염통 : 심장
- 일언반구 : 한 마디 말과 반 구절이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말을 이르는 말
[5]
용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너야말로 진실로 간사한 놈이로다. 천지간에 어느 짐승이 간을 내고 들일 수가 있단 말인가? 네가 얕은꾀로 살기를 도모하나, 과인이 어찌 허무맹랑한 거짓에 속으리오? 네가 과인을 기만하고 있는 죄 더욱 크도다. 너의 간을 내어 과인의 병을 고침은 물론이오, 임금을 속이려 한 죄를 엄한 벌로 다스리리라.
▶ 중심 내용 정리
용왕의 꾸짖음
▶ 본문 내용 정리
- 이 말 : 토끼에게 간이 없다는 말
- 천지간에 : 세상에
- 허무맹랑한 거짓 : 간을 꺼내어 바위틈에 감추어 두고 다닌다는 말
- 너의 간을 내어 ~ 엄한 벌로 다스리리라 : 토끼의 상황 (설상가상)
▶ 어휘 정리
- 도모하다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대책과 방법을 세우다
- 허무맹랑하다 : 터무니없이 거짓되고 실속이 없다
- 기만하다 : 남을 속여 넘기다
[6]
용왕의 지엄한 꾸짖음을 들은 토끼는 정신이 아득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젠 속절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며 곰곰이 앉아 생각하다가, 다시 웃으며 아뢰었다.
"용왕님은 제 말씀을 자세히 들으시고 깊이 생각하시옵소서. 제 배를 갈라 간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없으면 용왕님의 병환도 고치지 못하고 부질없이 저만 죽을 따름이오니 어찌 다시 간을 얻겠나이까?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용왕님은 깊이 헤아리소서."
▶ 중심 내용 정리
거짓말로 태연히 용왕을 설득하는 토끼
▶ 본문 내용 정리
- 지엄한 : 매우 엄한
- 다시 웃으며 아뢰었다 : 침착하고 능청스러운 토끼의 모습
- 제 배를 갈라 ~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오니 : 용왕의 약점을 건드려 위협하는 토끼
▶ 어휘 정리
- 속절없이 :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
[7]
용왕이 토끼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하거니와, 또 토끼의 얼굴색이 태연한 것을 보고 심히 의아해졌다.
"네 말과 같을진대, 간을 들이고 내는 표가 과연 있는가?"
토끼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생각하되,
'이제는 내 살아갈 방도가 생겼도다.'
하며 바로 여쭈었다.
"이 세상의 온갖 날짐승, 길짐승 가운데 저만 홀로 특별히 간을 들이고 내는 곳이 있사옵니다."
용왕이 그 말을 듣고 짐짓 노하여 꾸짖었다.
"네 말이 진실로 간사하다. 모든 날짐승, 길짐승은 물론이려니와 네 어찌 간을 출입하는 곳이 있겠는가?"
▶ 중심 내용 정리
토끼의 계략과 용왕의 의심
▶ 본문 내용 정리
- 토끼의 얼굴색이 태연한 것을 보고 : 거짓말처럼 안보임
- 네 말과 같을진대 ~ 과연 있는가 : 용왕이 토끼의 말에 속아 속아 넘어갈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말
- 이제는 내 살아날 방도가 생겼도다 : 위기 상황에서 재치를 발휘하는 토끼의 모습
▶ 어휘 정리
- 방도 : 어떤 일을 하거나 문제를 풀어 가려는 방법과 도리
- 날짐승 : 나는 짐승
- 길짐승 : 길 위의 짐승
[8]
토끼가 다시 여쭈었다.
"제가 간을 들이고 내는 곳의 내력을 말씀드리리다. 대개 하늘은 자시에 열려 하늘이 되옵고, 땅은 축시에 열려 땅이 되옵고, 사람은 인시에 생겨 사람이 되옵고, 만물은 묘시에 나와 짐승이 되었사오니, '묘'라는 하는 글자는 곧 저의 별명입니다. 날짐승, 길짐승의 근본을 따져 올라가면 제가 모든 짐승의 처음이 되니, 살아 있는 풀을 밟지 않는다는 기린도 저의 아래이고, 굶주릴지언정 좁쌀은 주워 먹지 않는다는 봉황도 저만 못하옵니다. 저는 특별히 하늘과 해와 달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 간을 들이고 내는 곳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용왕님께서 만일 믿지 아니하신다면 그만이려니와, 믿으신다면 제 몸을 자세히 살펴보옵소서."
▶ 중심 내용 정리
자신의 특별함 강조
▶ 본문 내용 정리
- 만물은 묘시에 나와 ~ 곧 저의 별명입니다 : 토끼가 만물 중 으뜸인 이유
- 제가 모든 짐승의 처음이 되니 : 만물이 묘시에 나와 짐승이 되었기 때문에 짐승 중 최고는 토끼라는 의미
- 살아 있는 풀을 ~ 저만 못하옵니다 : 상서로운 상상의 동물과 비교하여 자신이 더욱 특별한 존재임 강조
▶ 어휘 정리
- 내력 :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까닭
- 자시 : 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의 시간
- 축시 : 오전 1시부터 3시까지의 시간
- 인시 : 오전 3시부터 5시까지의 시간
- 묘시 : 오전 5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
- 기린 : 성인이 세상에 나올 것을 미리 알려 주는 상상 속의 동물, 생명이 있는 것은 밟지도 먹지도 않는다고 함
- 봉황 : 예부터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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