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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양반전 - 박지원(2)

by 문학 작품 분석 2024. 9. 19.

양반전 - 박지원 (2)

 

5)

 건륭 10년(1745년, 영조 21년) 9월에 이 증서를 만드노라.

 이 문서는 천 섬으로 양반을 사고팔아서 환곡을 갚은 것을 증명한다.

양반이란 여러 가지로 일컬어진다. 글을 읽으면 선비라 하고, 벼슬을 하면 대부라 하고, 덕이 뛰어나면 군자라고 한다. 무관은 서쪽에 늘어서고 문관은 동쪽에 늘어서는데, 이것이 바로 양반이다. 따라서 선비, 대부, 군자, 무관, 문관 가운데에서 좋을 대로 부르면 된다. 

 더러운 일을 딱 끊고, 옛사람을 본받고, 높은 뜻을 가져야 한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등잔을 켜고서, 눈은 가만히 코끝을 내려 보고 발꿈치를 궁둥이에 모으고 앉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동래박의>를 줄줄 외워야 한다. 배고픔과 추위를 참고 견디며, 가난 타령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어금니를 딱딱 마주치고 뒤통수를 톡톡 두드리며, 침을 입 안에 머금고 가볍게 양치질하듯이 삼켜야 한다. 소맷자락으로 털모자를 닦아 먼지를 떨어내어, 모자에 물결무늬가 뚜렷하게 해야 한다. 세수할 때는 주먹으로 비비지 말고, 입 냄새가 나지 않게 이를 잘 닦아야 한다. 소리를 길게 뽑아서 종을 부르며, 신발을 땅에 끌 듯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야 한다. <고문진보>, <당시품 휘>를 깨알같이 베껴 쓰되, 한 줄에 백 자씩 써야 한다. 

 손에 돈을 쥐지 말고, 쌀값을 묻지 말고,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맨 상투로 밥상에 앉지 말고, 밥보다 국을 먼저 먹지 말고, 물을 후루룩 마시지 말고, 젓가락으로 방아를 찧지 말고, 생파를 먹지 말고, 막거리를 들이켠 다음 수염을 쭉 빨지 말고, 담배를 피울 때는 볼이 움푹 패도록 빨지 말아야 한다.

 화가 난다고 아내를 때리지 말고, 그릇을 내던지지 말고, 아이들에게 주먹질을 하지 말고, 죽으라고 종놈을 야단치지 말아야 한다. 소와 말을 꾸짖되 그것을 판 주인까지 싸잡아 욕하지 말고, 아파도 무당을 부르지 말고, 제사 지낼 때 중을 부르지 말고, 추워도 화로에 곁불을 쬐지 말고, 말할 때 입에서 침을 튀기지 말고, 소 잡는 일을 하지 말고, 돈으로 노름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사항을 어기면, 이 증서를 토대로 관청에서 양반의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다. 

 정선 군수가 서명하고, 좌수와 별감이 증인으로서 서명함.

 

▶ 중심 내용 정리

첫 번째 매매 증서의 내용 - 양반이 지켜야 할 규범 / 체면을 중시하고 허례허식에 얽매여 있는 양반을 풍자

 

▶ 주요 내용 정리

  • 글을 읽으면 ~ 군자라고  한다 : 양반의 다양한 칭호
  • 무관은 서쪽에 ~ 바로 양반이다 : '양반'이라는 말의 유래
  • 더러운 일을 ~ 가져야 한다 :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는 부분
  • 얼음 위에 박 밀듯이 : 말이나 글을 거침없이 내리읽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
  • 손에 돈을 ~ 묻지 말고 : 돈과 관련된 일을 천하게 여겼던 양반들의 생각
  • 더워도 버선을 ~ 말아야 한다 : 체면과 격식을 중시하는 양반의 허세
  • 화가 난다고 ~ 말아야 한다 : 양반이 지켜야 할 가정내의 태도
  • 아파도 무당을 ~ 부르지 말고 : 유교 사상을 중시하는 당시의 사회상
  • 이러한 사항을 ~ 따질 것이다 : 양반이 지켜야 할 규범을 부자가 어길 경우 부자에게서 양반 신분을 빼앗을 수 있다는 의미

 

▶ 어휘 정리

  • 건륭 : 청나라 고종 때의 연호, 건륭 10년은 1745년을 말한다.
  • <동래박의> : 1168년에 중국 남송의 동래 여조겸이 <춘추좌씨전>에 관해 논평하고 풀이한 책
  • <고문진보> : 중국 송나라의 황견이 주나라 때부터 송나라 때까지의 시가와 산문을 모아 엮은 책
  • <당시품 휘> : 중국 명나라의 고병이 당나라 때 시인들이 지은 시를 모아 엮은 책

 

 

 

6)

이에 관청의 하인이 탁탁 도장을 찍는데, 그 소리는 마치 북을 치는 것 같고, 찍어 놓은 모양은 하늘에 별이 펼쳐진 것 같았다.

 

호장이 증서를 다 읽고 나자, 부자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말하였다. 

 

▶ 중심 내용 정리 

매매 증서의 내용이 자신의 기대와 달라 만족하지 못하는 부자

 

▶ 주요 내용 정리

  • 그 소리는 ~ 펼쳐진 것 같았다 : 도장이 가진 위엄이나 위압감을 표현, 별자리에 빗대어 표현
  •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 증서의 내용이 자신의 기대와 달라서

 

 

 

7)

"양반이라는 게 겨우 요것뿐입니까? 저는 양반이 신선 같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는걸요. 원하옵건대 제게 이익이 되도록 문서를 고쳐 주십시오."

 

▶ 중심 내용 정리

매매 증서를 고쳐 달라고 요구하는 부자

 

▶ 주요 내용 정리

  • 제게 이익이 ~ 고쳐 주십시오 : 자신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되도록 

 

 

 

8)

 그래서 문서를 다시 작성하였다.

 하늘이 백성을 낳을 때 넷으로 구분하였다. 네 가지 백성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선비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다.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는다. 글만 대충 읽어도 크게 되면 무과에 급제하고, 작아도 진사가 된다.

 문과의 홍패는 팔뚝만 하지만, 여기에 온갖 물건이 갖추어져 있으니, 그야말로 돈 자루이다. 서른에야 진사가 되어 첫 벼슬을 얻더라도, 오히려 이름난 음관이 되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를 수 있다. 언제나 종들이 양산을 받쳐주므로 귀밑이 희어지고, 설렁줄만 당기면 종들이 '예이'하므로 뱃살이 처진다. 방에서는 귀걸이로 치장한 기생과 노닥거리고, 뜰에서는 남아도는 곡식으로 학을 기른다.

 벼슬을 아니 하고 시골에 묻혀 살더라도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할 수 있다. 강제로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먼저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에게 대들겠느냐? 네놈들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 끄덩이를 잡아 휘휘 돌리고, 귀밑 수염을 다 뽑아도 누가 감히 나를 원망하겠느냐?

 

▶ 중심 내용 정리

두 번째 매매 증서의 내용 - 양반이 누릴 수 있는 특권

 

▶ 주요 내용 정리

  • 농사도 짓지 ~ 하지 않는다 : 경제적,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음
  • 문과의 홍패 ~ 돈 자루이다 : 과거에 급제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음 /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양바의 행태 지적
  • 서른에야 진사가 되어 ~ 학을 기른다 : 권력을 세습하고 무위도식하며 향락에 젖어 방탕하게 사는 양반들 비판
  • 강제로 이웃의 ~ 나를 원망하겠느냐 :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들에게 횡포를 저지르는 양반 비판

▶ 어휘 정리

  • 홍패 : 문과 급제자에게 주던 합격 증서
  • 음관 : 과거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피
  • 설렁줄 : 처마 끝 같은 곳에 달아 놓은 방울을 울릴 때 잡아당기는 줄. 사람을 부를 때 씀

 

 

 

9)

 부자는 증서 내용을 듣고 있다가 혀를 내둘렀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참으로 맹랑하구먼.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입니까?"

 

 부자는 머리를 흔들면서 떠나 버렸다. 그러고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양반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 중심 내용 정리

 양반이 되기를 포기하는 부자

 

▶ 주요 내용 정리

  • 참으로 맹랑하구먼 : 양반의 부도덕한 모습을 알게 된 부자의 허망함
  • 도둑놈 : 양반의 부정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말
  • 다시는 양반이 ~ 올리지 않았다 : 부자가 양반이 되기를 포기함

 

 

[핵심 정리]

  • 갈래 : 고전 소설
  • 배경 : 시간적 배경(조선 후기 , 18세기)
  • 제재 : 양반 신분의 매매
  • 주제 : 양반들의 무능과 허례허식, 탐욕에 대한 풍자
  • 특징 : 양반 신분의 매매 사건을 통해 양반의 모습 풍자 / 조선 후기 사회상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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