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 분석 - 작자미상 (3)
[9]
토끼의 말이 하도 그럴듯하여 용왕이 그 말이 사실인가 나졸에게 확인해 보라고 하니, 과연 엉덩이에 간을 들이고 내는 듯한 구멍이 별도로 있었다. 그래도 용왕은 의혹이 가시지 아니하였다.
" 네 말대로 간을 내는 곳이 있는 듯하나, 간을 넣을 때도 그리고 넣는가?"
토끼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제는 내 계교가 거의 맞아 간다.'
하고 여쭈었다.
"저에게는 다른 짐승과 같지 아니한 일이 많사오니, 잉태를 할 때에는 보름달을 바라보아야 잉태를 하고, 새끼를 낳을 때에는 입으로 낳습니다. 이런 까닭에 간을 넣을 때에는 입으로 넣나이다."
용왕이 더욱 의심하여 말하였다.
"네가 간을 들이고 낼 수 있다 하니, 뱃속에 간이 있는데 혹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배를 갈라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토끼가 다시 여쭈었다.
"제가 비록 간을 들이고 낼 수 있으나, 그 또한 정해진 때가 있사옵니다. 매달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뱃속에 넣어 해와 달의 정기를 받아 천지의 기운을 온전히 간직하고, 보름부터 그믐까지는 배에서 꺼내 옥처럼 깨끗한 계곡물에 씻어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깨끗한 바위틈에 아무도 모르게 감춰 둔답니다. 그렇기에 제 간을 두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영약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별주부를 만난 때는 곧 오월 하순이었습니다. 만일 별주부가 용왕님의 병환이 이렇듯 위급함을 미리 말했더라면 며칠 기다렸다 간을 가져왔을 것이니, 이는 모두 별주부의 미련한 탓이로소이다."
▶ 중심 내용 정리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용왕을 속이는 토끼
▶ 본문 내용 정리
- 엉덩이에 간을 들이고 내는 듯한 구멍 : 항문
- 별주부를 만난 ~ 오월 하순이었습니다 : 지금 뱃속에 간이 없다
- 이는 모두 ~ 미련한 탓이로소이다 : 별주부에게 책임을 돌림
▶ 어휘 정리
- 계교 : 요리조리 헤아려 보고 생각해 낸 꾀
- 잉태 : 임신
- 초하루 : 매달 첫째 날
- 보름 : 음력으로 그 달의 열닷새째 되는 날
- 하순 : 한 달 가운데 21일에서 말일까지의 동안
[10]
대개 수궁은 육지의 사정에 밝지 못한 까닭에 용왕은 토끼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속으로 헤아리되,
'만일 저 말과 같을진대, 배를 갈라 간이 없으면 애써 잡은 토끼만 죽일 따름이요, 다시 누구에게 간을 얻을 수 있으리오? 차라리 살살 달래어 육지에 나가 간을 가져오게 함이 옳도다.'
하고, 좌우에 명하여 토끼의 결박을 풀고 자리를 마련해 편히 앉도록 했다. 토끼가 자리에 앉아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거늘, 용왕이 가로되,
"토 선생은 과인의 무례함을 너무 탓하지 마시게."
하고, 옥으로 만든 술잔에 귀한 술을 가득 부어 권하며 재삼 위로하니, 토끼가 공손히 받아 마신 후 황송함을 아뢰었다.
그때, 한 신하가 문득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신이 듣자오니 토끼는 본디 간사한 짐승이라 하옵니다. 바라옵건대 토끼의 간사한 말을 곧이듣지 마시고 바삐 간을 내어 옥체를 보중하옵소서."
모두 바라보니, 간언을 잘하는 자가사리였다. 하지만 토끼의 말을 곧이듣게 된 용왕은 기꺼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토 선생은 산중의 점잖은 선비인데, 어찌 거짓말로 과인을 속이겠는가? 경은 부질없는 말을 내지 말고 물러가 있으라."
결국 자가사리가 분함을 못 이기고 하릴없이 물러났다.
▶ 중심 내용 정리
토끼의 꾀에 속아 넘어간 용왕과 자가사리의 간언
▶ 본문 내용 정리
- 토 선생 : 호칭의 변화( 너 → 토선생 : 용왕이 토끼의 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음을 보여 줌)
- 바라옵건대 ~ 보중 하옵소서 : 자가사리의 등장 / 위기감 · 긴장감 조성, 독자 흥미 유발, 용왕의 어리석음을 드러냄
- 간언 : 충고하는 말 ( 자가사리의 성격 : 강직함, 현명함)
▶ 어휘 정리
- 황공하다 : 위엄이나 지위 따위에 눌러어 두렵다
- 옥체 : 임금의 몸
- 보중 하다 : 몸의 관리를 잘하여 건강하게 유지하다
- 간언 : 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하는 말
- 자가사리 : 퉁가리과의 적갈색 민물고기로, 맑은 냇가의 돌 밑에 숨어 산다고 함
- 기꺼워하다 :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쁘게 여기다
- 하릴없이 :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11]
용왕이 이게 크게 잔치를 열어 토끼를 대접하였다. 온갖 귀한 음식이 옥으로 만든 쟁반에 쌓여 있고, 세상에 보기 드문 귀한 술이 잔마다 가득하고,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는 미녀들은 쌍쌍이 춤추고 노래하였다. 토끼가 술에 흠뻑 취해 속으로 생각하되,
'내 간을 줄지라도 죽지 아니할 것 같으면 이곳에서 평생 살고 싶구나.'
하였다.
용왕이 다시 토끼에게 말하였다.
"과인은 수궁에 거하고 그대는 산중에 살아 물과 땅으로 나뉘어 있더니,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됨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 그대가 과인을 위하여 간을 가져온다면, 과인이 어찌 그대의 두터운 은혜를 저버리리오? 후하게 보답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부귀를 함께 누리게 할지니, 그대는 깊이 생각할지어다."
토끼가 웃음을 참지 못하나, 조금도 얼굴색을 바꾸지 아니하고 기쁜 듯이 대답하였다.
"대왕은 너무 염려하지 마옵소서. 분에 넘치는 용왕님의 너그러움 덕택에 보잘것없는 목숨이 살아났으니, 그 은혜를 어찌 생각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물며 저는 간이 없더라도 죽고 사는 것에는 관계가 없으니 어찌 아끼겠나이까?"
이에 용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 중심 내용 정리
토끼를 위해 잔치를 여는 용왕
▶ 본문 내용 정리
- 내 간을 ~ 살고 싶구나 : 욕심을 버리지 못함 ( 욕심에 대한 경계)
- 과인은 수궁에 ~ 깊이 생각할지어다 : 토끼를 달래기 위한 영왕의 감언이설
- 어찌 아끼겠나이까 : 설의법
※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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